올해 초 아버지가 전립선암 수술을 받으셨다. 조직검사는 다른 병원에서 받으셨지만, 명색이 아들이 비뇨의학과 전문의인데 수술은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받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비뇨의학과 의사이고 같은 병원에 있으니 치료 과정에서 곁을 지키기에도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병원을 정하고 나니 다음 질문이 남았다. 과연 어느 교수님께 아버지를 부탁드릴 것인가.
처음에는 내가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병원의 같은 과 교수이고, 어떤 수술인지도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볼지조차 막막한 보호자와는 사정이 다를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려고 하니 내가 정말 궁금한 정보에는 쉽게 닿을 수 없었다. 수술 후 요실금이나 성기능의 변화는 어느 정도인지, 재발은 얼마나 생기는지 같은 중요하지만 찾기는 힘든 결과들이었다. 평소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해서 그런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어물어 알게 된 것은 주로 수술의 특징이었다. 누구는 어떤 방법으로 수술하고 그 방법에는 이런 장단점이 있다는 이야기, 누구는 수술 시간이 짧다, 또 다른 분은 어떤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였다. 선택에 도움이 되었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결과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각각의 특징이 아버지의 회복과 이후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까지 판단하기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있었다.
자료가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술 결과를 공개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개해서 득이 될 일도 많지 않다. 그러니 밖으로 나오는 숫자는 대개 내놓을 만한 것들이고, 재발률이나 절제면 양성률처럼 민감한 수치는 일부만 잘라 제시되기도 한다. 설령 숫자가 나와 있어도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어떤 환자를 주로 수술했는지에 따라 같은 지표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진행된 병기를 많이 맡는 의사의 절제면 양성률이 더 높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같은 병원의 같은 과 교수인 나도 이 정도인데, 의료인이 아닌 보호자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어도 들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무엇을 더 물어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에 필요한 자료가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질환과 수술 자체가 낯선 사람이라면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가려내는 일부터 어려울 것이다. 여러 의사를 만나 설명을 비교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실제 치료 결과를 나란히 놓고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진료실에서 받은 인상과 주변의 추천, 다른 환자의 경험, 수술에 관해 들은 몇 가지 특징을 모아 판단하게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한 분께 아버지를 부탁드렸다. 모든 궁금증이 풀린 뒤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장단점을 따져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무게를 두고, 충분히 확인할 수 없는 부분과 포기해야 할 부분을 받아들였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다른 선택의 장점은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확인하고 백 퍼센트 만족한 상태에서 의사를 고르는 일은, 나에게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끝내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의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분야를 깊이 이해하고 필요한 기술을 갖추었으며, 경험을 통해 판단을 다듬어온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 위에 자신의 판단을 지탱할 만한 확신이 있고, 그 확신이 어디까지인지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맡긴 몸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줄 사람인지, 인간으로서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믿음을 짧은 진료 한 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설명을 듣는 동안 느껴지는 태도와 질문에 답하는 방식, 환자를 대하는 모습에서 조금씩 짐작할 뿐이다. 그동안 들어온 평판도 그 판단에 더해진다. 평판만으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시간에 관한 단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술과 지식, 경험에서 오는 관록과 사람의 됨됨이에 관한 인상을 함께 모아, 충분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누군가를 믿고 내 몸을 맡기게 되는 것 같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질문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나는 과연 환자들에게 그런 의사인가. 내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지, 수술에 필요한 기술을 꾸준히 다듬고 있는지, 경험이 쌓인 만큼 판단도 깊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바쁜 날과 피곤한 날에도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와 맞는지, 나의 확신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도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좋은 의사를 찾아드리고 싶어 시작한 고민이, 내가 갖추어야 할 것들을 살피는 일로 이어졌다.
내 앞에 앉은 보호자 역시 같은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도 될지를 살피고, 병원에 오기 전 들었던 이야기와 눈앞의 의사를 맞추어볼 것이다. 그러나 짧은 외래에서는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근거로 치료를 판단하며, 어떤 부분을 조심하는지까지 충분히 전하기 어렵다. 보호자에게도 질문을 정리하고 설명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고, 진료실을 나간 뒤에야 궁금한 것이 떠오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료실 밖에서도 조금 더 깊이 설명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질환과 치료에 관한 정보를 차분히 읽고, 그 치료를 권하는 의사가 어떤 근거와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 중에는 그런 마음이 있다. 글 몇 편으로 실력이나 인격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판단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조금 더 충분히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버지의 주치의를 고르던 때, 나도 누군가를 믿고 맡길 수 있기를 바랐던 것처럼 지금 내 진료실을 찾는 보호자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 믿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맡은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다듬는 동시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돌아보려 한다. 내가 가족을 위해 찾았던 의사의 모습을, 나 역시 조금씩 갖추어가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