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에서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이제 졸업하시면 됩니다.” 수술 후 필요한 추적을 무사히 마쳤을 때, 혹은 걱정하던 문제가 저절로 좋아져 더는 지켜보지 않아도 될 때다. 보호자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아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얼굴로 서 있다가 따라 나간다. 문이 닫히면 나는 다음 환자의 기록을 연다. 그렇게 끝난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진단하고 수술하고, 설명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아이가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날을 향해 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오면 짧은 인사 뒤에 다음 진료가 이어진다. 오랫동안 걱정하던 일이 끝나도 진료실의 하루는 다르지 않다. 가장 좋은 결과가 가장 조용하게 지나간다.

합병증이 생기면 기록은 길어진다. 다시 수술하게 되면 그 과정을 집담회에서 되짚고, 비슷한 환자를 볼 때마다 당시의 판단과 수술 장면을 떠올린다. 잘 안 된 일에는 이름이 붙고 기억 속에 자리가 생긴다. 반면 아무 문제 없이 추적을 마친 아이의 차트에는 다음 기록이 생기지 않는다. 차트가 그냥 멈출 뿐이다.

그래서 지난 진료를 돌아보면 기억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곤 한다. 누공이 생겼던 아이, 수술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아이, 예상과 다른 경과를 보였던 아이는 얼굴과 보호자의 말까지 떠오른다. 무사히 진료를 마친 날들은 쉽게 한데 섞인다. 이런 기울어짐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의 판단을 되짚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불편한 기억을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만 별일 없이 지나간 날들이 하나둘 묻히다 보면, 기억의 많은 자리가 힘들었던 일들로 채워진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경계하는 일과 이미 확인한 좋은 결과를 인정하는 일은 함께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후자에 유난히 인색했던 것 같다. 수술이 계획대로 끝나고 회복도 무사히 지나, 외래에서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했다면 잠깐은 그 사실을 기뻐해도 될 텐데 말이다.

소아를 진료하다 보면, 필요한 진료를 모두 마친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대개 알지 못한다. 아이가 자라 자신이 받았던 수술이나 나를 잊고 지낸다면, 그것도 내가 바라던 좋은 결과일 것이다. 진료가 끝난 날의 짧은 인사가 그 아이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되기도 한다.

외래에서 다시 만나며 확인하는 좋은 결과도 있다. 어려운 수술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외래에 온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수술날의 기억도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수술실에서 보낸 힘든 시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와 보호자가 견딘 시간은 그보다 길었을 것이다.

그런 만남은 가슴속에 간직한 훈장처럼 남는다. 누구에게 내보이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그 아이가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자긍심이 된다. 힘든 수술과 진료가 이어지는 날에도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그런 기억에서 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잘 지내는 아이의 차트에 가끔 “좋습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필요한 소견을 적고 마지막에 덧붙이는, 조금은 사적인 기록이다. 나중에 차트를 다시 열었을 때 오늘의 마음도 함께 떠올릴 수 있도록 적어 두는 말이다. 걱정했던 일과 잘 안 된 일은 애쓰지 않아도 오래 기억에 남으니, 잘된 일에는 내가 작은 표시라도 해 두고 싶다.

어떤 아이에게는 “이제 졸업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어떤 아이에게는 다음 진료 날짜를 잡아 준다. 그 아이의 기록 끝에 “좋습니다”라고 쓸 수 있다면, 나도 잠시 마음을 놓으려 한다.

Dr. 김상운 (Sang Woon Kim, MD)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 · 캐나다 토론토 Visiting Scholar
2026년 10월, 토론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