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시간으로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각. 미뤄두었던 숙제를 마주하듯 웹사이트 개설 작업을 시작하자, 낯선 두근거림과 함께 비뇨의학과에 처음 발을 들이던 전공의 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지금 돌아보면 살인적이라 표현할 만한 수련 일정 속에서, 나는 환자들에게 결코 살갑거나 친절한 의사가 되지 못했다. 그저 '실력이 부족하면 몸으로 때워서라도 환자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각오 하나로 1년 차를 버텼다. 새벽 4시에 병동 드레싱 카트를 끌고 다니던 시절, 일흔을 족히 넘긴 어르신들이 낡은 흰 가운 주머니에 꼬깃꼬깃 쥐여주시던 몇만 원의 쌈짓돈. 당시엔 흔한 풍경이었다지만, 그 새벽마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죄송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공의를 마치고 소아비뇨의학과 전임의(Fellow)를 지원한 계기 역시 명확했다. '더 배워야만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수련 환경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시절,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전문의 간판을 달고 환자를 마주하는 것은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두려움과 위기감이 컸다. 마음속 스승으로 존경하던 은사님(한상원 교수님) 밑에서 조금만 더 배우고 수련하자는 결심으로 소아비뇨의학과를 택했다.

막상 택한 전임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줄어드는 전공의 인력 탓에 응급실 당직이 넘어왔고, 밤을 새운 채 온종일 수술실에 서 있다가 늦은 밤 논문을 쓰고 의무적인 회식 자리로 이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공의 시절보다 가혹한 일정이었지만,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인정받는 보람과 하나씩 손에 익어가는 술기를 확인하며 채워지는 만족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후 대학병원 교원으로 임용되면서는 처음엔 환자 수를 늘리는 데 조바심을 냈고, 진료실이 붐비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떨어지는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오롯이 감당할지 고뇌했다.

20여 년간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외과의(Surgeon)들을 지켜보며 내 마음속에 뿌리내린 '좋은 의사'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실력 없는 의사는 결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아무리 환자 앞에서 다정하게 공감하고 달콤한 말로 위로하더라도, 실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무능함은 환자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Harm)로 귀결된다. 둘째는 몇 년 전 우리 기관을 방문했던 우즈베키스탄 펠로우 친구(Savar)가 남겨준 화두, 바로 'Humanity(인간에 대한 진실된 마음)'이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서전,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서전, 묵묵히 버텨내는 끈기를 지닌 서전 등 저마다의 강점이 있는 의사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좋은 서전'을 넘어 '위대한 서전(Great Surgeon)'이 되기 위한 타협 불가능한 덕목은 환자를 향한 진실한 마음이다. 이 기본기가 없는 의사는 자신의 술기에 대한 반성이 없고, 부족함에 대한 자책이 없으며, 환자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살가운 위로는 건네지 못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환자에 대한 애정을 품고 타협 없는 실력만 갖춘다면 좋은 의사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의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해진 오늘날, 20년 전 학생 시절에 목격했던 외래 진료실의 패턴을 답습하는 내 진료 방식에 나 스스로 깊은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이 아카이브의 출발점

오늘날 외래 진료실이 마주한 본질적인 문제는 정보의 불균형이 아니다. 바로 '과도한 정보의 정제 과정 부재'다.

진료실 문을 여는 보호자의 90% 이상은 이미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하고 들어오며, 20~30%는 다른 대형병원을 거쳐 온다. 그 파편화된 인터넷 지식이나 이전 설명에 대한 흐릿한 기억이 실제 진단과 어긋날 때 부모들은 극심한 당혹감과 혼란을 표현한다. 그러나 턱없이 짧은 국내 외래 진료 환경 안에서 그 불안을 온전히 설득하고 풀어낼 시간적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료실의 물리적 한계로 미처 전하지 못했던 충분한 설명을 대체하고, 부모들이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기준을 잡아줄 정제된 아카이브에 대한 갈증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에 학생과 전공의들을 교육하며 느껴온 실전 교재의 아쉬움, 그리고 글을 쓰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던 개인적인 바람이 맞물렸다.

마침 얻게 된 캐나다 연수는 이 오랜 갈증을 실현할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되어주었다. 이 공간, The PedsUrologist는 그렇게 시작된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 속에서 가슴 졸이는 부모들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판단 기준이 되고, 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학생과 전공의들에게는 교과서 너머의 살아 있는 임상적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한 사람의 외과의로서 마주하는 소소한 사색들을 나누는 진솔한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Dr. 김상운 (Sang Woon Kim, MD)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 · 캐나다 토론토 Visiting Scholar
새벽 3시를 넘어가며, 2026년 9월 토론토에서